▪ 사도행전 2장 44~46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들어가는 글▶
힘들고 먼 길을 가야 할 때 필요한 것은 '말벗'이다. 멀고 긴 여행길을 바쁘게 이동하면서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친구와 즐겁게 이동한다면 아무리 긴 거리라도 짧게 느껴질 만큼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막과 정글을 지나야 할 때도 있고, 험악한 산악지형을 넘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길동무가 있다면 뜨거운 사막도, 짐승과 해충이 가득한 정글도 혼자서 보다는 극복하기 쉬울 것이다.
믿음의 길은 빨리 가는 길이 아니다. 끝까지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생각한 것처럼 쉽고, 편하고, 안전한 길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걸어온 믿음의 길을 고후 11:23~27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믿음의 길을 혼자 걸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님도 믿음의 길이 힘들고 외로운 길임을 아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증표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약속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혼자 걸어가는 길, 혼자 걸어가야 할 길'이 절대로 아니다. 본문은 믿음의 사람들이 말씀과 나눔을 통해 얻게 될 다음 단계를 말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같은 믿음,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다.
1. 믿는 자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44절 상)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지혜의 사람으로 우리는 솔로몬을 말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솔로몬이 교제에 대하여 한 말이 있다. 전 4:9~12절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듯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라는 말을 의미있게 강조한다. 마치 솔로몬이 강조한 '두 사람'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같다. 두 사람일 때 '좋은 상과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추위를 이기는 따뜻함 그리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믿는 자들의 힘든 '다 함께'할 때 나온다. 예수님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에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요 15:4-5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믿는 자의 교제는 단순한 친목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서로의 아픔과 무거운 짐을 대신 질 수 있는 진정한 '한 몸'으로서의 교제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과의 진정한 교제를 위해 이렇게 교제의 자리로 부르셨다. 마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예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은 '믿는 자들과 함께 할 때' 더욱 강하여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왜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야 했을까? (44절 하~45절)
44절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함께 하며 교제할 때 이들 속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변화가 있다. 자원함으로 참여하는 나눔이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의 필요'를 발견하게 한다.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우리 안에서 살아 교제하신다. 성령님과 하는 교재의 특징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말씀'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에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령님과의 교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침묵'하실 때가 두렵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요 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자들에게 '서로의 짐'은 무시하고 모른 채 해야 할 짐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를 한 몸으로 만들었다. 고전 12:25~27절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믿는 자는 한 몸이라는 거룩한 지체 의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교제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보일 때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서게 된다. 이것이 왜 재산과 소유를 팔아야 했는지에 대한 답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부족함에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강하게 느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채우신 것처럼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믿음을 위한, 복음을 위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을 위한, 교회를 위한' 공급과 채움에 순종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과 소유를 팔아 허비한 자들이 아니다. 이들의 교제를 위한 믿음 세우기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산 지혜로운 사람과 같은 행동이다. 자신이 가진 재산과 소유보다 더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중요한 일에 자원함으로 '교제의 뜰'을 만든 것이다. 우리의 교제는 '비교와 인색함의 침략'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나가는 글▶
교제를 통해 얻어진 값진 믿음의 보물이 무엇인가?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무엇을 내놓으셨는가? 빌 2:6~8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교제를 위해 생명을 내놓으셨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대가를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예수님은 내놓으셨다. 그런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르는 우리에게 주신 재산과 소유를 통해 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교제의 터를 새운 이들의 믿음을 통해 예루살렘교회는 날마다 기적과 같은 부흥이 경험되었다. 그리고 재산과 소유를 판 자들의 마음에 재산과 소유가 주지 못했던 새로운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46절의 마지막 말씀이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 이 마음은 돈과 명예, 권세로 살 수 없는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진정한 교제를 위해 나누는 자들이 얻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 마음의 소유자로 이곳에 있다. 우리의 교제는 '나'를 위함이 아닌, '너'를 위한 교제로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기대하신다.